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40년 전 어느날...
한양대학교 도서관에서 법학과 동기인 남녀가 열심히 사법고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여자는 대구출신 전도유망한 미모의 소유자.
남자는 전북 정읍 출신의 다리가 불편한 같은과 동기 남학생.
그 남학생은 불의의 교통사고로 20번의 수술끝에 다리를 져는 장애인이 되는 불행이 찾아 오고만다.
여자는 드디어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그러나 남자는 불행히도 불합격했다.
여자가 남자에게 묻는다...
"나 아직도 사랑한 거 맞아?"
"그럼... 사랑하고 말고"
"그런데 왜 나에게 결혼하자고 말을 안해?"
"....."
"답답해. .. 빨리 ..
그 이유를 말해 보라니까"
남자는 한동안 여자 얼굴을 쳐다보다가 어렵게 말문을 연다.
"나는 .. 진정으로 너를 사랑해... 그래서 너랑은 결혼할 수 없어"
"아니 그게 무슨 말이 그래?" 내가 알아듣게 말 좀해줘..."
남자는 긴 한숨을 토한 뒤 작심한 듯 이야기를 이어갔다.
"너는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판사로 살거 아니야? 그런데 나는... 번번히 사시에 낙방하고 전라도 출신에다 평생 다리 병신이잖아....
너도 이제 너에 걸맞는 배우자를 찾아..
난 너에게 그럴 자격이 없어..
이만큼 날 사랑해준걸로 나는 행복하고 만족해...
"너의 행복을 빌어 줄께.."
"너는 이제 꽃길만 가.."
"내가 너의 미래를 가로 막고 짐이 되는 사람이 되긴 싫어."
여자는 그런 남자를 물끄러니 바라보다 긴 한숨을 쉬며 다시 남자에게 묻는다.
그 외 다른 이유는 없는거지?
"정말 그런거지..." "알았어..."
그녀는 그남자를 물끄러니 바라보며 말한다.
"내가 합격하기전이나 지금이나 내사랑은 너 하나뿐이야.." "그 맘은 변치않을거야"
예상한것 처럼 부모님의 반대는 극심했다.
그 당시만 해도 대구여자가 아무리 조건좋은 전라도 남자라도 결혼한다는 건 주변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을 만큼 영.호남간 지역감정이 극심한 시기였다.
대구 출신 성공의 길에 들어선 미모의 판사출신 딸이 전라도 출신에다 다리까지 많이 불편한 청년과 결혼하겠다니 ..
중매쟁이들이 줄서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는데 부모에게는 청천벽력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의지를 꺽지 않았다.
내가 사랑한 사람은 그남자 하나라고 내가 행복하면되지 무엇이 문제냐고..
눈물로써 부모님을 설득하고 또 설득했다.
그녀의 끈질긴 노력과 진심에 부모님도 끝내는 두손두발 다들었다.
기어이 그녀는 부모의 승낙을 받게 된것이다.
7년의 열애끝에 둘은 결혼에 이르게 된다.
사실 그녀는 학교다닐때부터 교내에서도 유명한 킹카였다..
남자는 여자보다 3년 늦게 사시에 합격하고 변호사의 길을 걷게 된다.
그 사이 여자는 어엿한 판사가 되었다.
이 분은 1995년 판사생활 10년을 끝으로 정계에 입문하였다.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기 전 야당 당수 시절 '젊은 피'로 영입한 것이다.
김대중이 '대구 며느리를 두게 되었다'며 기뻐했다고 한다.
그녀의 아들은 십자인대파열로 병역면제 사유에 해당되지만 정치인의 자식은 한점 부끄럼없이 오해받을 행동을 하지 말아야한다는 평소 그녀의 원칙과 철학으로 인해 정치인 엄마를 둔 아들은 아픈 다리의 고통속에서도 어떠한 혜택도 없이 현역 만기제대하게 된것이다.
남편의 불편한 다리로 인해 내심 트라우마가 있을 그녀가 아들마져 정상인이 되지 못할까 얼마나 노심초사 걱정했을까.. 그러면서도 만기 제대시킨 그녀의 모습에 깊은 존경심이 절로 생긴다.
아울러 그녀의 지고지순한 사랑에 감동마져 든다. 그녀가 바로 법무부장관 추미애다.
따라서 그녀의 남편 서성환 변호사는 고향 정읍에서 서민 약자들에게 무료변론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고 밝혔습니다.
Reported by
김홍이 기자/PD
김학민 기자
김상억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