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새해 벽두부터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론’을 꺼내들었다. 정치권 안팎에선 찬반 논쟁이 한창이다. 민주당 안에서는 대표직에서 물러나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낙연 대표는 자신이 던진 사면론이 몰고 올 후폭풍을 몰랐을까. 정무적 판단이 탁월한 이 대표가 그럴 리 없다. 이낙연 대표 스스로도 자신의 이익만 생각했다면 사면 얘길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낙연 대표가 하나의 ‘승부수’를 던졌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중요한 것은 그 승부수가 내포하고 있는 정치적 메시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의 전략적 ‘포석’이 중첩돼 있다. 첫째 다음 대선은 ‘국민통합’을 빼고는 이야기하기 어렵게 됐다. ‘촛불 정권’에서 그 촛불이 꺼져가자 곳곳에서 갈등과 충돌이 첨예하게 벌어지고 있다. 진영 간 극한 대결은 물론이고 곳곳에서 악다구니와 왜곡, 냉소가 판을 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집권 5년차를 이대로 보낼 수는 없는 일이다. 이대로는 차기 대선에서 한 번 더 민주당을 찍어달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명분도 염치도 없다. 그렇다면 통합론은 차기 대선을 준비하는 ‘정지 작업’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 집권당 대표가 던지고 문재인 대통령이 받아주는 모양새는 나쁘지 않다.
둘째 대법원 판결 이후 본격화 될 사면론 공방전을 사전에 차단하면서, 그 의제를 선점하는 효과가 있다. 당장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형이 확정될 경우 정치권 안팎에선 사면론 이야기가 분출할 것이다. 그러나 그 때 결정하는 것은 이미 늦다. 사면 요구를 수용하든 안 하든 결국 야권의 주장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 혹여 사면을 거부한다면 앞으로 1년 내내 사면론을 놓고 정치권이 또 싸울 것이다. 문재인 정부 집권 5년차를 이렇게 보낼 수도 없는 일이다. 그걸 사전에 차단하고 집권 5년차의 국정운영 주도권을 쥐려면 ‘사면’이라는 의제를 먼저 장악할 필요가 있다. 이 대표가 그 총대를 멘 셈이다. 자신보다 정권의 이익을 먼저 고민한 승부수가 아닐 수 없다.
셋째 이 대표의 개인적 바람도 무시할 순 없다.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대권 주자의 가장 고민은 대선이 ‘지역 대결’로 펼쳐지는 것이다. 영남의 인구수를 당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영남의 정서를 끌어안는 전국적 액션이 불가피하다. 설사 비난이 있더라도 영남을 기반으로 하는 두 전직 대통령을 끌어안는 것은 이 대표가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물론 그 결과 영남표와 중도표를 얼마나 가져갈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최소한 차기 대선이 영·호남 지역 대결로 흐르는 것을 막으려는 노력까지 폄훼할 수는 없는 일이다. 혹여 지역대결이 다소라도 줄어든다면 그건 이 대표의 공이 될 수도 있다.
주로 진보세력에서 이 대표의 사면론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물론 중도세력도 그다지 우호적이진 않아 보인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비난을 감내하면서라도 문재인 정부의 정치적 부담을 먼저 해소하려는 이 대표의 노력은 높게 평가돼야 한다. 그 효과로 민주당 전체의 차기 대선 지형도 덜 부담스러울 것이다. 따라서 사면론은 이 대표 자신은 물론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승부수라는 점에서 마냥 비난만 할 일은 아니다.
-박상병 정치평론 전문가-
Reported by
김학민 기자
김홍이 기자/PD